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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23-28 본문

큐티

막 2:23-28

로보스 2013. 8. 14. 23:31

오늘 본문은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벌인 논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복음서를 읽다보면 유난히 예수께서는 안식일 규정을 자주 어기신다. 굳이 안식일에 고치실 필요 없는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시고, 굳이 안식일에 하지 않아도 될 노동을 안식일에 하신다. 이는 무언가 그 안에 메시지가 숨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길을 열기 위해 이삭을 잘랐다(23절). 바리새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며 예수께 따진다(24절). 예수께서는 다윗의 예를 드시며(25-26절)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씀하시고(27절) 예수께서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하신다(28절).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다윗의 예부터 살펴보자. 다윗의 예는 안식일 규정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율법 규정에 저촉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은 삼상 21:1-6에 실린 이야기로, 관련된 율법 규정은 레 24:6-9에 등장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하나님 앞에 진설하는 떡은 "지극히 거룩"하므로 아론과 그 자손 외에는 먹어선 안 되었다. 다윗과 함께 한 자들은 사울을 피해 도망치던 중에 식량으로 그 떡을 요청하였고, 아비아달은 그 떡을 내주었다.


예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율법의 본 목적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율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레 18:5). 헌데 식량이 없어 굶는 사람들을 율법 규정 때문에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본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지적하시며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고발하신다.


안식일 이야기로 돌아오자. 안식일의 본디 목적은 무엇인가?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창조된 세상을 보고 쉬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창 2:1-3). 창 2:1의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이 온전하게 창조되었음이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더 이상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하였다. 안식일의 본디 목적이 깨져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부르사 그들 가운데에서라도 안식일의 의미를 되찾게 하길 원하셨다. 율법은 주 7일 근무가 당연하던 시절에 주 6일 근무를 명한다. 비록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가 죄로 인해 깨져버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 온전한 창조를 선포하며 일하는 날 가운데 하루를 하나님께 기꺼이 드렸다. 게다가 그 하루는 나만의 쉬는 날이 아니라 종과 가축, 객에게까지 휴식을 주는 날이었다(출 20:8-11). 참된 자유와 기쁨의 날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예수 시대에 와서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속박이 되어버렸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기계적인 규정을 만들어 하나님의 백성을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안식일에도 주인이시기 때문에(28절) 그들에게 반대하시고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회복시키셨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를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날이다. 예수께서 유독 안식일에 기적을 많이 베푸신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류 타락의 결과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결박에서 푸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안식 아니겠는가?


지난 본문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좀 더 오늘 본문의 의미가 명확히 다가온다. 지난 본문 마지막에서 예수께서는 "낡은 가죽 부대"와 "새 포도주"를 대비시키신다(막 2:22).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즉 "새 포도주"는 기존의 종교화되어 버린 율법, 즉 "낡은 가죽 부대"에 담길 수 없다. 오늘 이야기는 이 메시지의 예화로 나온 것이다. "낡은 가죽 부대"에 속한 안식일 규정 역시 예수의 복음 안에서 새로워져야 한다.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창조를 기뻐하는 본디 목적을 회복해야 한다.


나는 "새 포도주"를 따라 살고 있는가, "낡은 가죽 부대"에 집착하고 있는가? 내가 지키는 수많은 교회의 전통들이 과연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오늘 하루도 무엇이 예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내가 되길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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