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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18-22 본문
본문은 언뜻 보면 연결되지 않는 두 가지 이야기를 병치시켜 두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금식 논쟁(18-20절)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옛 것과 새 것의 관계에 관한 설교(21-22절)이다. 우선 각 이야기를 살펴보고 그 연결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보길 원한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께 왜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지 묻는다(18절). 예수께서는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금식하지 않는 법(19절)이고 신랑을 빼앗길 때에 비로소 금식을 하는 것이라고 답하신다(20절). 이는 "금식"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다. 금식은 슬픔과 괴로움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특히 구약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길 간구할 때 금식을 하곤 했다(e.g. 삼하 12:16의 다윗).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어째서 금식을 하고 있었을까? 역사적 근거를 찾아봐야겠지만, 내 생각에는 나라를 빼앗기고 다윗 왕조가 끊긴 것을 통탄해하며 금식을 시작했던 것이 이어진 것 아닐까 싶다. 그런데 "신랑", 즉 다윗 왕조의 참된 계승자가 이 땅에 나타났다면 이 상황에서는 더 이상 금식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옛 것과 새 것에 관한 설교는 두 가지 비유로 구성되어 있다. 생베 조각과 낡은 옷(21절), 그리고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22절)이다. 이들은 모두 새로운 것이 낡은 것에 담기게 되면 둘 다 버리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권위 있는 새 교훈"(막 1:27)이 옛 형식 안에 담길 수 없음을 가르치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될까? 예수께서 선포하신 새 교훈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하면 둘을 연결시킬 수 있다. 예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고(막 1:15), 스스로 여러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를 보이셨다. 반면 옛 교훈은 어떠한 것인가?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였다. 예수의 임하심으로 인해 이 간구가 이루어졌으니, 더 이상 이 간구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 간구를 담고 있던 "가죽 부대"인 금식 역시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임하심으로 우리에게 새 교훈이 임했다. 새 교훈은 새로운 "가죽 부대", 즉 예수께서 명하신 새로운 형식을 입는다. 이제 율법의 문자적인 준수는 더이상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다. 대신 예수께서 보이신 사랑의 본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행할 본분이다(요 13:34). 새 교훈과 새 계명을 따라 오늘도 주님처럼 살아가길 기도한다.
순교자의 빛을 따라 주의 뒤를 쫓아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새 시대는 새 사명을 우리에게 주나니
진리 따라 사는 자는 전진하리 언제나